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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속보를 알려드립니다

한 달 전쯤 한국에서 일어난 계엄 사태는 수많은 뉴스를 쏟아냈다.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해제, 국회의 대통령 탄핵안 가결과 헌법재판소의 심의 소식을 전하는 뉴스마다 ‘속보(速報)’라는 제목이 붙었다. 그것뿐인가 그 이후에도 여러 뉴스가 ‘속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찾아왔다. ‘속보’는 중대한 사건, 사고, 재해 등이 발생했을 때, 언론 매체에서 우선적으로 보도하는 뉴스를 의미한다.   언론에서는 ‘속보’라는 제목을 달면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것을 알았는지 기사마다 ‘속보’라는 이름을 붙이고는 저마다 급한 뉴스라고 내놓는다. ‘속보’라고 내놓는 기사가 대부분 별로 급할 필요가 없는 소식인 줄을 알면서도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속보’라는 말의 ‘속’자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는 것은 1970~80년대 ‘속보’를 다급히 외치던 시절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 작은 나라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아침 방송에서 속보가 전해졌다. 뉴스 진행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속보를 알려드립니다”라는 말로 뉴스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TV 앞에 모여 귀를 기울였다. 뉴스 진행자가 속보를 전했다.     “오늘 아침에도 어제 아침과 마찬가지로 동쪽에서 해가 떠올랐습니다.”     그러자 그 뉴스를 보던 사람마다 깜짝 놀라며 서로에게 말했다. “그게 사실이야! 아니, 세상에! 그렇게 큰 태양이 오늘 다시 떠오르다니 정말 놀랍고 신기하지 않아요!”     이 이야기는 성공학의 대부로 알려진 브라이언 트레이시가 자신의 책 ‘Time Power(잠들어 있는 시간을 깨워라)’에서 전하는 우화다. 트레이시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 아침에도 해가 떠올랐다는 뉴스가 속보로 전해지고, 그 소식에 감탄하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는 어리석은 바보들의 나라가 아니라, 지혜로운 천재들의 나라라고 했다. 그러면서 천재들은 공통으로 모든 사물과 사건을 경이롭게 바라보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새해를 맞는 우리에게도 범상치 않은 뉴스가 전해졌다. 어리석은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말이겠지만, 지혜로운 사람들에게 깜짝 놀랄만한 소식이 될 속보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새해 아침이 밝았습니다’라는 뉴스다.     지구가 비행기보다 100배나 빠른 시속 6만7000마일의 속도로 쉬지 않고 달려, 태양을 365일 만에 한 바퀴 돌아 우리에게 새해 첫 아침을 선사하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소식이란 말인가!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동안 낮과 밤이 수백 번 바뀌었고, 봄·여름·가을·겨울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이런 계절의 변화에 따라 곡식이 나고 자라 열매를 맺었고, 우리의 인생도 다채로운 이야기가 담긴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았다.     새해 첫 아침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경이로운 뉴스로 여기는 사람이야말로 인생을 지혜롭게 사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하루하루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고, 그만큼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새해 아침이 밝았다.’는 속보를 전하며, 새해 인사를 드린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이아침에 뉴스 진행자 새해 인사 새해 아침

2025-01-01

[이 아침에] 새해 당부

늘 떠오르는 해지만, 새해 아침에 맞는 해는 언제나 새롭다. 지난해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새로운 날의 소망을 담고 떠오르기 때문이다. 새해를 맞으며 당부의 말이 오간다. ‘새해에는 건강히 지내라고, 하는 일마다 잘되라고, 소원 성취하라고’. 말로 단단히 부탁하는 당부가 고맙다.     ‘풀꽃’이라는 시로 이름을 알린 나태주 시인의 ‘새해 아침의 당부’라는 시가 있다. ‘올해도 잘 지내기 바란다/내가 날마다 너를 생각하고/하나님께 너를 위해 부탁하니/올해도 모든 일 잘될 거야’. 시인은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푸근한 소리로 새해를 맞는 이들에게 올해도 모든 일 잘될 것이니 아무것도 의심하지 말고 걱정도 하지 말고 또박또박 걸어서 앞으로 가기만 하라고 당부한다.     부모님이 계신 고향을 떠나 도시에 사는 아들이 있었다. 효심이 깊었던 아들은 고향에서 농사짓는 연로하신 부모님이 늘 마음에 걸렸다. 좋은 교육을 받고, 번듯한 직장에서 나름대로 괜찮게 사는 아들이었다. 착한 아들은 시간만 나면 부모의 농사일을 돕기 위해 고향을 찾았다. 꽤 큰 농사를 짓는 부모님의 농사일은 끝이 없었다. 모내기와 추수는 물론, 비료 주기, 농약 뿌리기, 잡초 제거하기, 물 대기 등 일 년 열두 달 쉼 없이 이어지는 농사일에 아들도 슬슬 지쳐갔다.   그날도 부모님을 돕기 위해 고향에 내려온 아들이 새벽에 부모님과 함께 널따란 들판 앞에 섰다. 해도 해도 끝없는 일, 아무리 부지런히 일해도 표나지 않는 일이 갑자기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이런 아들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아버지가 말했다. ‘눈아, 겁내지 말라 손이 있다!’   아들의 가슴에 파고든 이 말은 초등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고 은근히 낮잡아 보던 배우지 못한 아버지의 말이 아니었다. 눈앞에 보이는 일들에 치여 두려움으로 마주한 숱한 날들을 성실한 손으로 감당해 낸 농부의 외침이었고, 두려움에 주저앉지 않고 몸으로 부딪치겠다며 던지는 출사표요, 결국은 눈에 들어오는 두려움을 손의 꾸준함으로 이겨냈다는 체험이 담긴 지혜의 말이었다.   우리의 눈앞에도 2024년이라는 널따란 들판이 펼쳐졌다. 눈에 보이는 세상이 무섭다. 전쟁과 재해가 끊이지 않는다. 올 한 해도 감당해야 하는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더구나 세상에서는 반갑지 않은 소리만 크게 들린다.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이 여기저기서 쉴 새 없이 터진다. 요즘은 나만 잘한다고 안녕을 장담할 수 없는 세상이다.   또다시 시작되는 한 해를 바라보면 솔직히 겁부터 난다. 불확실한 미래를 내다보면 두려움이 밀려오고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아무리 세상이 험할지라도 거친 세상이 토해내는 두려움을 이길 무기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다. 눈에 들어오는 일의 무게감을 이겨내게 하는 것이 성실한 손이라면, 마음속에 생긴 두려움을 이기게 하는 것은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손이다.     새해를 맞아 스스로 이른다. ‘눈아, 겁내지 말라 손이 있다’. 눈앞에 가득한 두려움을 이겨낼 성실한 손이 있다. 험한 길 홀로 가게 내버려 두지 않고 붙잡아 줄 손도 있고, 내가 잘되기를 빌어 주는 기도의 손도 있다. 그 귀한 손이 있는데 겁낼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 손을 의지해서 새해 당부를 한다. ‘올해도 모든 일 잘될 거야’라고 말이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이 아침에 새해 당부 새해 당부 새해 아침 이웃집 할아버지

2024-01-10

[시로 읽는 삶] 좋은 궁수가 되려면

화살이 과녁을 맞추려면/ 이리저리 돌아갈 순 없다. 하지만 좋은 궁수는/ 거리와 바람을 수락한다./ 그러니 네가 과녁일 때 나는 조금 위를 겨눈다.   -울라브하우게 시인의 ‘조금 위를 겨눈다’ 전문   울라브하우게의 시를 새해 첫 시로 읽는다. 과녁을 향한 궁수의 활 조준은 얼마나 민감할 것인가. 한 치의 오차도 허락될 수 없는 긴장감 속에서, 그러나 좋은 궁수는 거리와 바람을 수락한다. 과녁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복병으로 등장하는 변수들을 가늠할 줄 알아야 한다. 거리와 바람을 염두에 두는 일은 인생의 목표지향점을 겨냥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필수이겠다.   새해에는 나도 활을 잡아보고 싶다. 과녁을 향해 전심을 다 하여 활을 당겨보고 싶다. 희망이라는 과녁을 향해 활을 당겨본 지가 언제였나 싶다. 거리와 바람을 기꺼이 수락할 줄 아는 궁수가 되어 어떤 목표이든 그것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   과녁을 향해 활을 잡고 조준하던 시간이 내게도 아예 없지는 않았겠으나 명중에 이르지 못한 것을 바람의 탓으로 돌리곤 했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서풍 때문에, 예고 없이 불어온 북풍 때문에,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활은 빗나가고 늘 제자리에서 발을 구르는 모습이었다.   좋은 궁수는 거리와 바람을 수락한다는 시의 한 구절이 매사 이유가 많은 나에게는 통증처럼 스민다. 바람을 수락한다는 것은 바람의 변수와 방향을 예측하는 것이기도 하나 그것이 어떤 상황이든지 기꺼이 받아들이고도 중단 없이 나아가려는 의지일 것이다.     한 해의 시작에는 여러 다짐이 있겠다. 그 다짐들에 앞서 다시 한발을 날려보려고 새롭게 활을 잡는 궁수의 결기가 필요하겠다. 일 년에 한 번쯤은 일상의 권태를 몰아내는 일부터 삶의 전반을 아울러 되짚어보는 시간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새해라는 시간은 말끔하게 정리를 끝낸 책상에 앉아 다시 뭔가를 써가는 시간이다.   “그리고 네가 과녁일 때 나는 조금 위를 겨눈다”는 마지막 행은 나아갈 길의 목표를 조금 상향 조정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한다. 점점 왜소해지는 존재감, 협소해지는 관계성, 탄력을 잃은 삶의 동력으로 너무 낮은 곳에서 엉거주춤했다. 발밑 세계에서 뭉쳐지다 녹는 눈사람처럼 사고력도, 신앙심도, 희망도 모두 그랬다. 그 좁은 안에서의 티격태격이 누추하게 여겨진다. 그 좁은 안에서의 설전이 무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옹졸한 생각에 갇히고 야박한 인심에 묻혀 점점 작아지는 것 같던 날들에 대한 반성을 끌어내는 시를 만난 새해 아침. 눈을 들어 멀리 내다보는, 생각의 폭을 넓혀 깊고 다양하게 바라보려는 시도가 있을 때 좋은 궁수가 될 수 있다는 말로 이 시를 해석하고 싶다.   삶이 막막하고 점점 초라해진다고 생각될 때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건 뭘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한 구절의 시구로도 스멀스멀 힘이 솟기도 한다. 점점 작아지더라도 생각과 마음의 폭만은 작아지지 말자는 각오가 생기기도 한다.     울라브 하우게는 1908년 노르웨이 울 빅에서 태어나 1994년까지 그곳에서 과수원 농부로 평생 고향 마을 떠나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그의 문학은 장소성에 뿌리를 두면서도 시공을 넘나드는 큰 스케일로 인간 실존을 투시하는 직관을 특징으로 한다. 젊어 한때 우울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으나 고통 중에도 품위를 읽지 않고 자연과의 교감을 통한 정갈한 시를 써서 슬픔에 처한 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주었다. 조성자 / 시인시로 읽는 삶 궁수 새해 아침 과수원 농부로 장소성에 뿌리

202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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